연맹 왕국에 이어 고대국가들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먼저 군사 강국인 고구려의 건국부터 전성기, 멸망까지의 흐름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썰을 듣는다는 기분이 되도록 정리하기 때문에 맥락을 쉽게 잡아두는 용도로 봐주세요.
- 고대국가 고구려
- 전성기 이전
- 고국천왕과 미천왕
- 소수림왕
- 위기와 소수림왕의 등장
- 전성기
- 광개토대왕
- 장수왕
- 7C 이후 쇠퇴기
- 수나라와 당나라
- 멸망
- 전성기 이전
흔히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는 가야라는 나라도 있어 4국 시대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가야는 고대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대국가의 의의에 대해 정리해 볼 수도 있습니다. 연맹 왕국과 다르게 고대국가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왕'이라는 존재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연맹 왕국의 경우 왕을 선출하는 방식이지만 고대국가에서는 왕을 세습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왕의 핏줄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국가 고구려
3국시대 고대국가 중 '왕'이 힘을 갖추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나라는 전성기를 맞이 하는 것은 공식처럼 알고 계셔야 합니다. 강력한 왕권을 위해서는 법을 세워서 국가를 정비하는데 이는 율령 반포를 통해 주로 하였고, 종교를 퍼뜨려서 의식을 통일시키고, 그 종교의 우두머리의 자리에 왕이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왕권의 힘을 굳히게 되는 원리입니다.
전성기 이전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광개토 대왕이 출현하기까지 기본적으로 힘을 닦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동명성왕인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후 태조왕이 이어받아 옥저를 정복하면서 수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기게 됩니다. 어딘가 정복도 했고 수도도 옮겼고 슬슬 국력을 키우는 재미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죠.
고국천왕과 미천왕
그 후에 고국천왕이 이제 완전 삘 받아서 정비를 시작합니다. 부자세습을 통해 왕의 힘을 키웠고 부족 개념이었던 5 부족을 행정 구역으로 바꿔 5 행정구역 체제로 정비합니다. 거기다가 꽉 잡고 안정적인 정치가 되다 보니 을파소가 좋은 아이디어도 제시하게 되는 선순환이 이어집니다. 이때 건의한 것이 진대법(춘 대 추납)으로 백성들에게까지 신경 써주면서 왕의 권위가 쑥쑥 높아지게 되죠.
잘 정비되고 있는데 고구려의 어쩔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당시 중국의 위나라가 쳐들어 오면서 견제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성장 중이던 고구려는 그런 견제를 이겨내면서 미천왕에 들어서는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하고 대동강 유역을 확보, 서안 평을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중국계를 밀어내면서 국가 결속력을 더 높이게 된 것입니다.
위기와 소수림왕의 등장
순탄할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고구려이기 때문에 잘 되는 듯 하니 역시나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당시 전성기를 시작한 백제의 근초고왕에 의해서 고국원왕이 사망해 버립니다. 이 사건은 고구려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외침으로 왕이 사망한 일로 나라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 와중에 중국 전연에서 또 건드리기까지 하니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때 등장한 게 소수림왕입니다. 승부욕이 장난 아닌 건지 더 불 타 오릅니다. 앞서 고국천왕 때 살짝 기반을 다진 거라면 전성기의 비법을 모두 사용합니다. 율(헌법) 령(행정법) 반포를 통해 국가를 정비하고 불교를 전진에서 수용해 와서 전파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걸 국민들이 알아야 의도대로 움직일 것이기에 가르치기 위한 태학을 설립합니다.
전성기
앞서 말했듯이 전성기의 비법을 다 적용하고 나면 전설의 시작입니다. 소수림왕이 율령 반포, 불교 수용, 태학 설립을 다 해두고 나서 다음 왕으로 당시 10대였다고 하는 광개토대왕이 등장합니다. 20대에 정복활동을 시작하여 30대에 사망했다고 하는 광개토 대왕은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장수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고구려의 최전성기가 펼쳐집니다.
광개토대왕
이때 당시 광개토태왕으로도 불리었고 연호로 '영락'을 사용했습니다. 연호 자체가 황제만 사용할 수 있으니 그 위세가 얼마나 높았으면 연호도 막 사용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후연을 공격하여 요동을 장악하면서 힘을 키워 나갑니다.
그리고 당시 신라의 내물 마립간(왕)의 요청으로 신라에 침입한 왜를 막아주러 내려갑니다. 그리고 끝까지 추격하는 과정에서 금관가야를 툭 치고 올라오게 되는데 이 일로 금관가야가 쇠퇴가 시작되었습니다. 툭치고 간 것이 왜, 신라, 가야를 흔들었으니 위상이 엄청났습니다. 신라는 이 일로 고맙다는 의미로 호우명 (청동) 그릇을 제작하였습니다.
장수왕
아버지의 기세를 이어받은 장수왕은 그 업적을 기리면서 비석을 세웁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는 반대로 남하정책을 펼치면서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남하정책 중에 중국이 건들면 피곤하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 중국 쪽에는 조아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균형외교로 중국 남북조와 좋은 관계가 유지되어 남하정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전성기의 필수 코스인 한성(서울) 점령을 성공하게 되는데 예전 고국원왕의 복수가 필요했던 고구려는 백제의 개로왕을 죽임으로써 성공합니다. 이런 것들이 기리기 위해 충주 고구려비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세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신라와 백제는 당연히 겁을 먹을 수밖에 없고 나제 동맹을 맺게 됩니다.
7C 이후 쇠퇴기
장수왕이 잘한 것도 있지만 당시 중국은 남북조시대여서 고구려를 신경 쓰기보다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중국이 수나라로 통일이 되면서부터는 관계가 좋았던 고구려라도 슬슬 건들게 됩니다. 특히, 고구려는 중국 외에 태왕 호칭을 쓰면서 연호도 사용하기 때문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명분도 충분했습니다.
수나라와 당나라
수나라의 침입에서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당나라의 침입은 안시성 싸움과 같이 유명한 전쟁 모두 승리하면서 중국의 침입을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당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천리장성을 축조하는 과정에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상황이었습니다.
멸망
642년 연개소문이 구데타를 일으켜 왕이 된 상황에 신라에서 백제의 침입을 막아달라는 요청이 왔고, 당시 한성을 점령 중이던 신라에게 한성을 주는 조건을 내세웠다가 신라가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연쏘공으로 강건함을 앞세운 연개소문이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신라는 당나라에게 원군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와 고구려 모두 멸망하게 됩니다.
이후 검모잠, 안승, 고연무가 고구려 부흥운동을 통해 다시 살려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 세명은 꼭 외우고 있어야 하므로 묶어서 삼 연승으로 암기하는게 꿀팁이더라고요. 원래는 잠연승이지만 삼연승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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