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공부를 다짐하게 되면 수학은 행렬과 집합을 달달 외우고 있듯이 국사는 선사시대까지는 대부분이 전문가입니다. 스토리 텔링 형식으로 천천히 읽어볼 수 있도록 공부 내용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선사시대
- 구석기 시대
- 구석기시대의 삶
- 구석기 시대의 주요 흔적
- 신석기시대
- 신석기시대의 삶
- 신석기 시대의 주요 흔적
- 구석기 시대
- 계급사회의 시작
- 청동기 시대
- 청동기 시대의 삶
- 청동기 시대의 주요 흔적
- 철기 시대
- 철기 시대의 삶
- 철기 시대의 주요 흔적
- 청동기 시대
선사시대의 시작
선사시대에서는 70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가 점점 더 발전되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단순 무리 생활이었다가 시간이 흘러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면서 문명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를 천천히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수월 합니다.
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는 무리 사회입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가장 먼저 발견된 시대인데,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족보행이 가능하고 머리와 손을 사용 가능할 뿐입니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시기별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 선사 시대입니다.
구석기시대의 삶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들은 돌아다니면서 주워 먹는 채집과 무리 지어 사냥을 떠나는 수렵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생활해야 하므로 옷은 동물을 잡아 가죽 옷을 입게 되고 먹을 것들을 찾아 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므로 이동생활을 하게 됩니다.
구석기시대의 주요 도구 및 유적지
- 연천군 전곡리
- 공주 석장리
- 단양 금굴
- 청원 두루봉 동굴
계속 돌아다녔기 때문에 적당한 식량이 있고 안전한 동굴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집을 지을 능력이 없고, 짓는다고 해도 계속 돌아다녀야 하므로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물과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동굴에서 주로 살게 됩니다.
- 뗀석기(주먹도끼)
- 슴베찌르개
자연에서 가장 쉽게 보이면서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은 나무와 돌 정도입니다. 그중에서 더 단단하고 무기가 되는 것은 돌이고, 이런 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다 보니 뗀석기를 사용하게 됩니다. 특히 연천군 전곡리에서 뗀석기가 처음 발견되었는데, 이 전에는 유럽이나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발견되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조금 으스대는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연천군 전곡리에서 뗀석기가 발견되면서 학회는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먹고살기 바빴기 때문에 평등 사회로 세상이 굴러갔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문명도 발전하고 적응해 나갑니다. 그러한 예시 중 하나가 바로 슴베찌르개입니다. 슴베찌르개는 돌을 다듬어서 나무에 고정할 수 있도록 화살촉처럼 다듬은 도구입니다. 이 말은 즉슨 날이 더워지면서 큰 동물보다 작고 날랜 동물들이 많이 출현하게 되었고 이들을 쉽게 잡기 위해 창이나 화살 같은 도구를 만들기 위해 진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신석기시대
앞서 구석기시대에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다니고 채집했던 생활임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구도 발전되고 식물을 키워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고 비로소 농경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시작되는 만큼 밭농사 수준이긴 하지만 더 이상 자연이 주는 대로 먹지 않고 능동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석기 혁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물론 기존 구석기시대의 삶인 채집과 수렵 생활은 이어 나가지만 농사를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억지로 돌아다니며 생활할 필요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신석기시대의 삶
원한다면 정착해서 살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집이 필요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물이 흐르고 있는 강가나 물가 쪽에 살게 되는데 이는 물 근처가 잡아먹을 것들이 많고, 물이 있고, 식물 역시 물이 있는 곳에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조개를 많이 잡아먹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연관된 유적 역시 많기 때문입니다.
신석기시대의 주요 도구 및 유적지
- 움집과 패총
- 서울 암사동
- 부산 동삼동
사람들은 모여서 집을 짓고 살게 되는데 이게 움집입니다. 처음 도입된 만큼 비나 피하고 따뜻하면 됐기 때문에 강가에 땅 파서 지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화로를 두어 불을 활용했습니다. 주요 유적지는 두 군데인데, 패총 때문입니다. 조개 패(貝) 자를 사용하는 무덤인데, 그 이유는 조개를 따로 모아두는 분리수거장이기 때문이고, 고고학자들은 조개껍데기를 아무렇게나 버릴 시 발에 상처를 입는 등의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지 않을까 해석합니다.
- 간석기 (갈돌, 갈판)
- 이른 민무늬 토기
- 빗살무늬 토기
- 가락바퀴, 뼈바늘
정착해서 살다 보니 남는 식량의 저장이 필요하고 관련하여 토기가 발전했습니다. 일단 만들고 본 (이른) 민무늬 토기와 빗살무늬 토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먹고 살만 하고 기술이 발전하여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이용해 의류 역시 발전했습니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급히 변하는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애니미즘 : 태양
- 토테미즘 : 동물
- 샤머니즘 : 무당
살다보니 자연 정령을 믿게 되었습니다. 살던 곳에 비가 안내 리거나 동물이 없거나 한다면 삶에 위협을 느끼게 되니 믿기 시작합니다. 자연에서 제공되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보니 관련된 민간 신앙이 발전하게 됩니다.
선사시대 계급사회의 시작
선사시대에서 계급이란 것이 시작된 시기가 바로 청동기 시대부터 입니다. 신석기 혁명으로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큰데, 농사의 결과로 빈부 격차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농업기술도 발전되어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생산력이 많아지다 보니 잉여 생산물 역시 많아졌습니다. 자연의 섭리답게 이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발전하게 되면서 지배계급이 생기게 됩니다.
청동기 시대
지배계급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런 사람들이 군장이 되었고 청동기 시대의 사회는 군장국가로 불리게 됩니다. 국가 개념이 처음 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계급 문화가 시작된 만큼 계급을 뽐내기 위한 것들도 많이 생겼고 기술이 얼마나 발전되었는지가 청동기 시대의 포인트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삶
청동기 시대인 만큼 모두가 청동기를 사용할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루기 힘들고 희귀했던 청동기는 있는 자들이 누리는 도구였고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신석기 문화인 돌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장의 등장으로 국가 개념이 도입되었고 고조선이라는 국가의 시작도 이 청동기 시대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주요 도구 및 유적지
- 움집
- 반달돌칼
- 민무늬 토기
집 구조가 변하게 됩니다. 그간의 삶의 데이터가 축척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산임수 형태로 살게 됩니다. 이때 풍수지리가 생긴 건 아니고 그냥 경험상 좋은 곳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앞에는 물이 흐르고 뒤로는 구릉이 있는 곳에 움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지상가옥으로 사려는 변화가 컸고 큰 차이점은 이제 화로를 가장자리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되어 논농사를 짓다 보니 수확의 용이성이 필요하여 반달돌칼을 활용했습니다. 현재의 낫처럼 수확을 위해 발전한 도구입니다. 민무늬 토기의 경우 무늬가 있다 없어졌으니 후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토기에 손잡이가 처음으로 생긴 토기라는 점에서 기술의 발전이 맞습니다.
- 비파용동검
- 고인돌
- 돌널무덤
- 거친 무늬 거울
청동기는 비싸고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기득권의 특권이었습니다. 고인돌은 모두 알다시피 큰 돌을 괴어 만드는데, 청동기 용품들과 함께 본인들을 뽐내기 위해서입니다. 캐치할 부분은 고인돌과 비파용 동검을 통해서 고조선의 문화 범위를 상징한다는 점입니다.
- 울주 대곡리 반구대 바위그림
- 경북 고령 장기리 바위그림
- 부여 송국리 유적
- 여주 흔함리 유적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사냥과 물고기 잡이의 성공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부여 송국리와 여주 흔함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움집 터 및 생활에 관련된 유적지가 있습니다.
철기 시대
청동기 시대와 연결되는 것들이 많이 있는 시기입니다. 국가가 발전되다 보니 국가 간의 관계가 생기게 되고, 연맹왕국 사회 입니다. 연맹왕국은 여러 부족이 모여 왕국을 결성한 형태로 하나의 맹주국을 중심으로 연맹체를 구성했습니다. 왕권은 약하고 각 부족은 각각의 부족장이 다스리는 형태였습니다.5C부터 철제 농기구가 등장하면서 농업생산량과 철제 제품으로 기술이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철기 시대의 삶
기본적으로 청동기 시대의 삶과 비슷합니다. 철제 기구가 생겼다는 점이 달라지고 각 나라별로 교류가 시작한 시기 입니다. 특히 중국과의 교류 흔적이 발견되어 중국과의 관계가 철기시대부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철기 시대의 주요 도구
- 덧널무덤 : 돌을 덧댄 무덤으로 관이 2개입니다. 관 하나에는 물품을 담는 역할입니다.
- 독무덤 : 항아리를 연결한 무덤
- 세형동검
- 잔무늬 거울
- 농경 무늬 청동기
- 덧띠 토기
- 검은 간 토기
무덤 형태가 변했고 세형동검이 발견됩니다. 기존 비파형 동검과는 다르게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잔무늬 거울은 청동기 시대의 거친 무늬 거울에서 발전한 형태로 기술의 발전을 의미합니다.
- 명도전, 오수전
- 붓
- 거푸집
명도전, 오수전이는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청동기로 만든 칼 모양의 화폐입니다. 이 유물과 붓을 통하여 중국과 교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푸집이 발견되면서 철제 기구들을 생산했습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부터 거푸집이 있어야 비파형 동검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므로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됐을 것이라는 것이 학회의 의견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 전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년의 신라의 시작과 통일까지 (0) | 2021.07.24 |
---|---|
백제 역사와 왕의 업적 (0) | 2021.07.24 |
고구려 건국과 왕들의 역사이야기 (0) | 2021.07.23 |
고조선부터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까지 연맹왕국 총정리 (0) | 2021.07.23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접수하기 꿀팁 정리 (1) | 2021.07.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