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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전근대

우리나라 역사 발해 스토리텔링 요약 정리

by ♾⚕⨊⪒૱ 202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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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조선 정조 시대에 유득공의 발해고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역사로 편입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발해고를 빼고는 그만큼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명백히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고대시대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남북국 시대로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1. 발해의 건국
    1. 초기 발해
      1. 무왕
    2. 발해의 전성기와 멸망
      1. 문왕
      2. 선왕
      3. 멸망
    3. 의의

 

발해의 건국

발해 지도 (출처 : 에듀넷)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인들을 이끌고 지린 성 동모산에서 698년에 건국했고 926년도에 멸망했습니다. 신라는 676년에 삼국통일을 성공했고 935년에 고려에 복속되었으므로 시기상 남북국 시대로 묶기 적당 합니다.

 

초기 발해

발해는 기본적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를 극혐 하는 수준입니다.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초기 발해의 모습입니다.

 

무왕

무왕은 장문휴를 시켜 산둥 지방을 공격하였고 스스로 '인안'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일본, 돌궐과 교류를 하면서 흑수 말갈을 복속하며 발해의 위상을 보여 줬습니다. 연호를 사용한다는 의미는 황제를 칭하는 말로 당나라에 꿀리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발해의 전성기와 멸망

무왕은 당나라를 배척했지만 문왕부터는 오히려 당나라 문물을 수용하면서 선왕에 이르어서는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9세대 초 전성기를 누려 '해동성국'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문왕

무왕과 다르게 당나라와 친선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당의 제도와 문물인 3성 6부를 적용했고, 새로 천도한 상경성에는 당의 주작대로를 모방해서 재현해 두기도 하였습니다. 당과 친선 관계를 유지했듯이 신라와의 상설 교통로인 신라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때도 '대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상당한 힘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선왕

요동에 진출하면서 지방 행정 체제를 확립합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안 그래도 큰 땅에 요동 진출까지 했으니 더 큽니다. 그래서 지방 행정을 5경 15부 62주로 체제를 정립하고 이때의 연호는 '건흥'이었습니다. 옛 고구려 땅은 물론 더 큰 영토를 보유하니 '해동성국'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멸망

기록에는 거란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선왕까지 해서 엄청난 전성기를 누렸던 것을 떠올리면 너무 허무하게 멸망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역사 학자들은 당시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한 것은 맞지만 백두산의 폭발 주기와 엇비슷한 점을 가리키며 화산 폭발로 힘이 약해진 상황에서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한 것은 아닌지 추측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계승의 증거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우선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나 고구려 왕은~"이라고 정확히 칭 한 것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 외에도 온돌 문화였다는 점과 이불병 좌상, 돌 사자상, 발해 석등을 보아 고구려 문화와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당나라 문화를 수용하면서 3성 6부제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의 명칭은 당나라와 다르게 사용함으로써 독자성을 갖고 있었고, 그 외에 상경성의 주작대로나 중정대, 주자감을 통해 당의 문화를 수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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